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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비파 본편으로부터 3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한복을 맞추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 연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복집을 여러 군데 알아보기는 적절하지 않았다. 한복이 상용화되지 않은 한국이기에 가격 면에서는 각오를 해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기는 여간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이 직접 한국으로 나갈 수는 없어서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한 주문 밖에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비파는 방금 전에 택배 기사로부터 받은 두 개의 얇고 큰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상자 겉면에는 한복집 이름이 적혀있었고 검은색 상자에 금색으로 고급스러운 프린팅이 되어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설레었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서 맞춘 한복이었다. 서로의 나라의 전통의상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출판사 직원 청첩장을 받은 자리에서 나왔다. 한복만이 아니라 기모노도 맞추기로 하고 현재 제작에 들어간 상태였다. 비파는 거실 탁자 위에 상자를 두었다. 얼른 열어보고 싶었지만 애써 참고 핸드폰을 들었다. 각도를 잘 맞춰서 사진을 찍고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아이, 드디어 왔어!

생각보다 빨리 왔네.]

 

사진까지 첨부한 후에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을 놓아두고 주방으로 향했다. 전원이 꺼진 전기포트를 들어서 티팟에 부었다. 2분 정도 후에 물을 싱크대에 붓고 다시 뜨거운 물을 부었다. 홍차 티백을 하나 골라서 거실로 가지고 나왔다. 아이가 올 때까지 작업을 하면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비파는 노트북을 켜고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30초 정도 후에 티백을 넣었다. 물이 주홍빛으로 천천히 물드는 것을 잠시 보다가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외주는 방송사와 신문사 외주였다. 정확히는 조만간 촬영을 시작할 방송 프로그램 대본 검수와 신문에 실을 단편 소설이었다. 마감 기한은 앞으로 두 달 정도 남았는데 두 외주가 기한이 비슷해서 지금부터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도 그나마 어제 힘내서 오늘 분량까지 다 해놓았기 때문에 쉴 수 있었다.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홍차를 마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비파.

아직 열어보진 않은 모양이네. 먼저 열어봐도 되는데.]

 

[아이.

우리가 같이 고민해서 주문한 한복이잖아? 같이 봐야지.

오늘 언제 끝나?]

 

[비파.

일리가 있는 말이야. 돌아가면 같이 보자.

오늘 촬영은 스케줄대로라면 7시에 끝날 예정이야. 촬영장이 집에서 거리가 제법 있어서 30분 정도 걸릴 거야. 저녁 먼저 먹도록 해.]

 

벽시계를 보니 오후 4시 21분이었다.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한 후에 저녁을 챙기면 될 듯 했다. 아이가 오면 한복을 입어볼 생각에 들떠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파는 자료 파일을 열었다.

 

 

아이가 돌아온 시각은 저녁 7시 45분이었다. 아이는 목도리와 외투를 벗자마자 거실로 나와서 비파의 옆으로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는 사진으로 본 상자와 노트북, 홍차 찻잔, 차반 위에 다 먹은 밥과 반찬 그릇이 있었다.

“비파, 저녁 언제 먹었어?” “두 시간 정도 전일 거야.”

“또 좋은 문단이 떠올라서 급하게 저녁 만들어온 거야?” “들켜버렸네.”

“그렇게 먹으면 그새 음식이 다 식어버리잖아. 아니면 급하게 먹을 텐데 그러면 체할 테고. 비파는 체도 잘 하는 편이니까 잘 챙기는 편이 좋아.” “미안. 습관이 들었나 봐.” 아이는 그릇을 놓아둔 차반과 티팟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전기포트에 물을 받고 전원을 켰다. 고무장갑을 끼고 가볍게 설거지를 끝낸 후에 티팟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것을 가지고 거실로 나가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비파가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이제 한복 입어볼까?” “응. 기대되네.” “나도.”

첫 번째 상자에는 비파의 한복이 들어있었다. 상자를 열었을 때 둘이서 뽑은 색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에 가까운 연한 색으로 저고리를, 조금 진한 보라색 원단에 연보라색 꽃을 수놓은 치마를, 거기에 같은 색으로 고름을 달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 위에 마찬가지로 연보라색 꽃이 수놓아진 하얀 버선이 놓여있었다. 두 번째 상자에는 역시 아이의 것이 들어있었는데, 비파의 치마와 같은 색으로 몸통 부분을, 소매는 비파의 저고리 색과 같이 부탁했다. 바지 색도 치마 색과 같았다. 민무늬 하얀 버선도 들어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한복을 입어보기로 했다. 치수를 상세하게 재서 주문을 넣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한복집에서 온 메일에 한 번 입어보고 연락을 달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는 한복을 입으면서 느껴지는 감각이 생소해서 방에서 나온 후에도 계속 앞뒤를 훑어보았다.

“신기해?” “응.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양식의 옷이어서 그런지 신선해.” 아이의 호기심 어린 눈을 보면서 비파는 웃었다. 아이는 비파의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항상 보헤미안룩만 입는 비파였기에 전통 의상을 입으니 오히려 낯설었다. 색 매치 같은 것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옷이 오히려 비파에게 어울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복은 비파에게 어울렸다. 낯설기 때문에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뿐이라는 걸 아이는 깨달았다.

비파는 아이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쑥스러움을 담아 웃었다.

“어때?” “잘 어울려. 조금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아이도 잘 어울려. 조금 낯설게 느껴지지만.” 비파는 아이의 말을 따라하며 웃었다. 이제 이 한복은 다음 주에 있을 마을 축제에서 입어보자는 비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피부에 닿는 이국의 옷도, 비파의 모습도 신선하면서 가슴 부근을 간질이는 것 같아서 아이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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